모터스포츠와 카지노(...)의 전통, 모나코

모터스포츠 역사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죽 이어진 레이스는 많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지녔다고 할 수 있는 곳은 세 군데로, 프랑스의 작은 도시 르망과 미국의 인디애나폴리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부자가 넘쳐나며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휴양지 중 하나인 모나코입니다. 몬테카를로는 모나코에서도 특히 카지노가 많은 동네입니다.

사실은 몬테카를로 랠리 말고도 다른 대회의 과거 기록도 알고 싶었는데 영 없어서 그만(...)

Rallye Automobile Monte Carlo


조그마한 나라 모나코가 모터스포츠로도 유명해진 것은 역시 모나코 공작 알베르 1세와 그의 아들 루이 2세의 공로가 매우 큽니다.

땅덩어리도 손톱만하고, 딱히 뭐가 없으니 먹고 살기 힘든 모나코에선 19세기 중후반부터 카지노가 허가되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잘 안 왔는지 1911년 모나코 공작 알베르 1세는 관광객(+카지노 수입) 유치를 위해 직접 Rallye Automobile Monte Carlo, 즉 몬테카를로 랠리 대회 개최에 관여하게 됩니다. 직접 관여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 아들인 루이 2세는 Automobile Club de Monaco(모나코 자동차 클럽 정도?)를 후원하여 모나코 그랑프리 대회를 여는데 한 축을 맡았습니다.

이런 대회를 여는 것에 왕족이 발벗고 뛰는 일은 역시 왕족다운 대범함이라 해야되나, 아니면 먹고 살기 힘든 나라에서 왕족이 비지니스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작은 나라의 슬픈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외증조할아버지(왕가 가계도가 복잡합니다) 덕으로, 지금도 F1 모나코 그랑프리때마다 모나코 공작께서는 꼬박꼬박 시상을 하러 텔레비전에 나오고 있습니다.

조금 이야기가 샜지만, 이렇게 오래된 대회의 역사를 존중하여 몬테카를로 랠리는 1973년부터 시작된 WRC 이벤트 중 항상 맨 처음, 1월에 열리고 있습니다.

미니 쿠퍼, 몬테카를로 스페셜

1964 미니 쿠퍼 S 몬테카를로 랠리 우승차

1960년대 후반의 몬테카를로 랠리의 우승 기록을 보면 가장 흥미로운 이름 - 미니 쿠퍼를 찾을 수 있습니다.

1960년대의 거대한 상징이 된 작은 차 미니의 디자이너, 이시고니스 경의 친구 중엔 존 쿠퍼가 있었습니다. 그는 유능한 F1 컨스트럭터로, 엔진을 뒤에 싣는 발상을 하여 1959년 F1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도 F1 경기에 나오는 차 가운데 엔진을 앞에 실은 자동차는 전혀 없을 정도입니다.

혁신을 일으키긴 했지만, 쿠퍼가 참가한 팀은 기술 면에서 최고로 뛰어나지는 않아서 점차 경쟁력이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쿠퍼는 이때쯤 미니의 가능성을 눈여겨보게 되고, BMC 경영진을 설득하여 스페셜 모델인 미니 쿠퍼와 미니 쿠퍼 S를 만들게 됩니다.

당시에도 이미 쟁쟁한 브랜드였던 메르세데스-벤츠나 시트로엥, 사브, 포르셰 등의 틈바구니에 등장한 미니 쿠퍼는 분명 비웃음거리가 되었겠지만(벤츠랑 포르셰 틈바구니의 티코...) 1962년부터 1968년까지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기에 그런 비웃음은 쏙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특히 1964년부터 1966년까지는 연이어 우승을 차지했지만, 1966년에는 헤드라이트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실격되어 1966년의 우승은 취소되었습니다. 그러나 1967년엔 보란듯이 다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미니 쿠퍼의 랠리 우승은 오직 모나코에서만 일어난 일입니다. 스페셜 모델의 사양을 보면, 지금 기준으로도 절대 좋다고는 못하는 조건입니다. 엔진이 앞에 달린 앞바퀴굴림, 엔진은 1300cc에 고작 70마력, 4단 트랜스미션, 13인치 타이어를 달았지만, 구불구불한 길을 그 가벼운 무게(700kg 이하)와 작은 크기(길이 3m 약간 넘을 정도)라는 무기로 헤쳐나갔음이 틀림없습니다... 마치 모 만화의 구닥다리 두부배달차처럼요.

언제나 어디서나 모터스포츠라면 나타나는 포르셰, 911

1969 포르셰 911S

창업자인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 때부터 모터스포츠가 있는 곳에 거의 언제나 나타났던 포르셰. 지금의 포르셰를 쌓아온 자동차라고 해도 아주 틀리지 않을 911은 몬테카를로 랠리에도 뛰어들었습니다. 1967년 처음 3위로 입상한 911은 초기의 것으로, 뒤에 실은 엔진으로 뒷바퀴를 굴리기 때문에 코너 안쪽으로 더 꺾여 들어가버리는 오버스티어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험한 환경에서 운전을 하는 만큼 랠리 드라이버들은 얼마간 조종이 되는 오버스티어를 언더스티어(덜 꺾이는 상태)보다 좋아하기 때문에 그리 문제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버스티어가 될 것 같으면 어떻게든 드리프트를 해서 때울 수 있으니...

911 S의 양산차 사양은 2200cc의 수평대향 6기통 엔진, 180마력에 5단 트랜스미션, 1080kg 정도입니다. 이런 것만 보면 현재의 기준으로도 전혀 뒤떨어진 차가 아니지만, 이걸로 "속도를 낸다"는 것은 악질적이며 무서운 오버스티어를 극복해낸 사람들만이 쥘 수 있는 환희였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차가 옆으로 가는건 떠올리기도 싫기 때문에-_-

프랑스의 경량급 스타 알피느 A110

1973 알피느 A110 1600S

둥글둥글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알피느(Alpine) A110은 1970년부터 1973년까지 가장 강력한 랠리 자동차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포르셰와 비슷한 뒤에 실은 엔진으로 뒷바퀴를 굴리는 방식입니다. 르노의 1600cc 엔진을 실어 힘은 떨어지지만, 미니와 비슷하게 가벼움(역시 700kg 이하)으로 승부를 보는 쪽이었습니다.

1969년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911 S들에 이어 3위에 입상한 A110은 1971년 1, 2, 3위를 몽땅 차지하여 시상대를 프랑스 잔치로 만들었고, 1970년부터 1972년까지 열렸던 "국제 랠리 선수권대회"의 많은 이벤트에서도 우승했습니다.

1973년엔 르노가 알피느를 완전히 사들였고 때맞춰 WRC 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A110은 르노 웍스 팀의 자동차로 출전하여 당당히 첫 해 우승까지 차지하여 최강임을 과시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A110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달도 차면 기우는 게 당연한 이치인 것처럼, 작은 A110의 차체로 더 이상 성능을 올린다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고, 또한 때맞춰 이탈리아에서 발표된 "최종병기"급(디자인도 성능도 모두) 자동차가 1974년에 랠리 참가 자격을 따내어 출전하기 시작, 이전까지의 랠리 자동차 개념을 완전히 바꿔놓았기 때문이죠.

마치며

확실히 1970년 초까지의 자동차 랠리는 비교적 소박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두 바퀴만 굴려서는 잘 미끄러질 수밖에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까요?

1970년부터 1972년까지 열린 "국제 랠리 선수권 대회"와 현재도 벌어지는 "세계 랠리 선수권 대회"의 차이라면, 영어의 International이 World로 바뀌었다는 것뿐입니다. 이미 "국제-" 때부터 메이커 우승팀을 가렸기 때문에, 랠리가 곧 유명 메이커의 치열한 격전장으로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였겠죠.

참고



Edited : 2006/12/4 22:11 (미니는 다른 곳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렸습니다. 관련 내용에 줄 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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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qut

2006/08/26 14:59 2006/08/2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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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
첫 번째 법칙: 저명하고 나이가 있는 과학자가 뭔가 가능하다고 하면, 그건 거의 맞다. 같은 사람이 뭔가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그건 거의 틀리다.
아더 C. 클라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