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와 착각이 넘실거리는 국가 정체성

6.25 전쟁 근처에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생물이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운운하면서 뭔가 저같이 집중력이 별로인 사람은 알 듯 말 듯한 이야기를 했다고 하네요. 그럼 정체성이란 무슨 말일까?

모두가 좋아하는 네이버 국어사전에 넣은 정체성에 대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정체성 [正體性]
[명사]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
정체성 [停滯性]
[명사]사물이 발전하거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한곳에 머물러 있는 특성.

...

첫 번재 정체성이라... 제가 살아온 날이 많은 편은 아니겠으나, 저 "존재의 본질"이란 대개 어떤 방법이 되건 자신의 모습을 더 오래 잇고자 하는 의지 이외엔 찾아보기가 힘들더군요. 생물이 되었건 생물이 만들어낸 집단이 되었건 간에 이것만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6월 25일에 전쟁이 나면서 많은 것이 파괴되었고 이 나라의 본질이 도전받으며 많은 것이 파괴되었습니다. 전쟁같은 때에 정체성, "자신의 모습을 오래 잇자"같은 목적을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고, 짧게 줄여서 일반화시키면 "살아남자, 살리자"가 되겠고, 그 방법은 대부분 나라를 위해 열심히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목적이라기보다는 방법론이죠.

하지만 종종 손님과 주인이 바뀌듯이 그런 상황을 겪으면서 목적과 방법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원래 "살아남자, 살리자"는 목적을 잊고 나라에서 요구하는 방법을 자기의 원래 목적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늘어난 겁니다. 물론 전시 상황에선 둘이 별개가 아니긴 하지요. 전쟁이 끝나면 달라져야 하기는 하겠는데.

어쨌든 시간이 흘러 나라를 지켜낸 이 사람들이 자식을 낳고 가르치고 살아온지가 어느덧 60년은 족히 되었습니다. 다만 이 사람들에게 불행한 문제가 딱 하나 있었다면, 운이 좋았는지 괜찮은 지도자를 만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나라가 너무 빨리 발전해버려서 전쟁을 겪고 자신의 목적을 착각한 사람들이 짐작했던, 그런 세상이 완벽히 만들어지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물론 예측한대로 세상이 흘러가지는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지만.

...

그리고 인류 역사에 언제나 그랬으니 별로 놀랍지도 않은 사실인데, 그 사람들의 손자들은 할아버지들을 고리타분하다고 싫어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할아버지들이 왜 그러는지 잘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언제 전쟁이 났다는 사실도 절반 넘게 모른다죠?

목적과 방법을 착각했던 할아버지들은, 건방지고 버르장머리없는 손자들을 보면 나라에서 요구하는 그런 인물상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정체성의 정의대로 자신이 이어주고자 하는, 안타깝지만 착각이 좀 끼어들었던 그런 목적아닌 방법론을 손자들에게 찾아보기 힘들 뿐만 아니라, 때로 이해하지 못하고 충돌하는 모습에서 큰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아쉽게도 이 할아버지들은 세상을 돌리는 방법론이 둘 이상 있을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을 겪었습니다. 그 경험에서 자주 나오는 말인데, 한 나라의 정체성은 절대로 변하지 않으며, 쓰러져가는 나라를 수호하고 발전시킨 우리들이 살아온 삶의 방법론이야말로, 영원하며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선이므로 이 나라의 정체성은 우리들에게 달렸다는 생각을 말하는 것도 당연하겠죠.

아, 그런데 위 조건 중에 하나는 맞았지만 하나는 틀렸네요. 당연히 한 나라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망하지 않고 살아남고 남들보다 더욱 발전하는 그것만이 정체성입니다. 하지만 나라를 수호하고 발전시킨 이들의 방법론이, 인류 멸망의 순간까지 영원한 시간동안 무조건 절대선이 될 수는 없는 겁니다.

비슷한 예요? 오직 칼만 아는 무사가 칼만을 정의의 도구로 여긴다면 그 무사는 결국 비겁한 화살에, 비겁한 총에, 비겁하게 독을 탄 음식에... 쓰러지고 말 겁니다. 칼은 방법론이지 목적이 아니니까, 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

물론 저는 똑똑하지는 않아도 북쪽에서 뻔히 30년 넘게 실패한 "붉은 피와 주먹" 방법을 다시 해보자는 그런 바보는 아닙니다. 제 정체성이요? 그저 저도 제 모습을 오래 가도록 남기길 원하는 것이 제 정체성이죠. 오래 살든, 이름을 날리든, 결혼을 하든...

다만 각목으로 촛불든 사람을 때리고 도망가거나, 괜히 방송국 앞에서 불꽃쇼를 벌이는 방법은 이젠 제 정체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방법이 정체성에 도움을 준다면 그건 오래가는 정체성이 아니라 앞으로 못 나가는 정체성에 도움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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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qut

2008/06/25 20:22 2008/06/2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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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arFain 2008/06/26 12:00 # M/D Reply Permalink

    동감합니다.
    새삼 세대차이가 심하게 느껴지는 요즘이에요~

    1. pequt 2008/06/30 20:31 # M/D Permalink

      세대 차이가 항상 있었다면, 이젠 세대간 싸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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